예감, 예지력. 이것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 by

나는 예감, 예지력에 대해서는 내가 확실하게 느끼고 경험한적이 없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원인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물리학을 접근한 이유는 단순히 텔레파시의 작용 때문에 물리학을 공부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도중에 이상한 생각을 했었다.
상대성이론에서 이동하는 물체의 시간은 정지해 있는 것과 다르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으며 빛의 속도로 이동하면 시간은 멈춘다. 머 이런 것들을 증명한 것들을 봤었고 양자물리학으로 들어가면 미세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여기서 큰 혼란을 느꼈다. 지금도 생각하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이 실제세계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는 전자통신을 사용하고 무선인터넷을 사용한다. 전자파가 벽을 통과해서 멀리 있는 상대와 통화를 한다.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벽을 통과할 수는 없지만 벽을 통과해 100km 멀리 있는 상대와 통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벽을 통과해서 통신을 하는 전자파, 그 작은 미세세계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빛에 속도로 이동한다면 시간이 정지 되는 게 분명한데 이 미세세계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큰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통신뿐만 아니라 우리는 빛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빛이 비치는 모든 장소에 미세세계에서의 시간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가? 이것이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세계의 시간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것은 그냥 가설이 아니다. 100% 미세세계의 시간은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하고 완전히 다르다. 누군가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고 이상한 생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증명된 상대성이론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되고 우리가 쓰고 있는 무선전화기, 무선인터넷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정도에 헛소리를 해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미세세계의 시간은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랑 완전히 다르다. 과거는 모르겠지만(빛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입자는 없으니) 우리는 수 많은 미래가 겹쳐져 있는 형태의 세계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몹시 크다라고 생각된다.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상상하기도 어렵고 그 무엇을 상상해도 상상한 것보다 복잡한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단지 우리는 여러 세계의 미래와 겹쳐진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육감에 예지력을 떠올렸다. 만약 미세세계에서는 우리가 미래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가 미래를 미리보고 현재를 대처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으며 동물들의 육감을 보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했다.
동물들의 육감을 검색해서 여러 동영상을 보게 되면 자연재해와 같은 일들을 미리 예측해서 피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을 예감으로 미리 미래를 본 것이 아니라면 그 동물들의 행동을 해석하기가 어렵다. 분명히 동물들은 알 수가 없는 상태에서 미리 알고 행동한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단순히 우연이다. 또는 사람에게 있는 청각 후각과 같은 오감이 더 잘 발달되었고 그 오감을 통해 반응했다라고 해석하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동물들의 육감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어린 시절 내가 얼핏 얼핏 했었던 생각들을 하고 운명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명체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만약 미래를 보고 현재를 대처하는 유전자가 돌연변이 형태로 발생한다면 그 유전자는 생존에 매우 유리한 유전자로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그 유전자는 성공된 진화의 형태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그 유전자는 언제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동물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인간도 그 육감을 이어받았는데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두뇌의 영역에 밀려 그 감각이 약화되었다. 우리는 그 감각을 육감이라고 말하며 그 감각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것을 직업(무속인, 점집)으로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또한 동서양 막론하고 전인류가 운명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육감을 통해 체험을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해야 될 때 미래를 미리 보고 온다.
우리가 점 집에 가서 점을 치는 것과 똑같다. 모든 사람에게는 예지력이 있으며 항상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는 강도는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다. 무속인들을 찾아가 미래를 점치는 것은 예지력이 특출 나게 타고난 사람에게 조언을 얻는 행위로 보여진다.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시크릿’에서는 생각하면 이루어진다. 라는 주제를 상당히 강조한 내용을 담았다. 원하면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신앙간증을 하듯이 경험담을 쏟아낸다. 또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운명에 대한 작용으로 발생한 것이라 생각된다. 더 이야기 하기 전에 앞서 말한 점집하고 시크릿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점집은 굳이 가서 보지 않아도 스스로 누구나 느낄 수 있으며 만약 정해진 것이라면 바꿀 수 없으며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점집에 가서 결과를 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시크릿 그들이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들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시크릿에서는 무조건 생각하면 누구나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강하게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내용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좋은 결과가 나온 과정이 이러하였으니 당신들도 이러한 과정을 해내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니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운명이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억지로 생각한다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데 나의 생각은 억지로 생각하면 이루지도 못할뿐더러 더 망가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창의적인 인간은 예지력과 같은 육감을 퇴화시키고 지구를 정복했다. 예지력은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길로 이동하고 불리한 길은 피해간다. 좋은 남편을 찾고 아이를 키우려는 여자들 삶에는 이런 방식의 삶이 중요하겠지만 남자들은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미래를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인류는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미래를 바꿔버린 것이다. 나의 미래가 안 좋다? 그럼 방법을 찾아서 그 미래를 바꾸는 삶의 태도를 살아왔다. 그리고 그 결과 인류는 지구를 정복하게 된다.
인류가 지구를 정복한 것으로 보아 육감보다는 두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육감에 따르기보다는 두뇌를 사용해서 미래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 다음에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운명론을 접근할 수 있는데 과거 우리가 지구를 정복하기 전에는 동물들과의 싸움이었다. 인간 vs 동물 여기서 인간이 승리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 vs 인간의 싸움으로 접어들었다.
인간(두뇌) vs 동물(신체적조건과 육감)에서 인간(두뇌) vs 인간(두뇌)로 변경된 것이다.
두뇌와 두뇌싸움 서로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능력이 같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전의 상대는 멍청하고 수동적이었다. 인간은 능동적으로 환경을 바꿔버리기 때문에 승리했지만 인간 대 인간은 서로 환경을 바꿀 수 있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다. 그래서 싸워도 비기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누군가 약간 더 뛰어날 수 있어도 같은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어서 큰 차이는 없다.
만약 당신의 경쟁자가 어떠한 마음을 먹고 판단을 해서 미래를 당신에게 불리하게 바꾼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그 바뀐 미래를 감지하고 다시 자기에게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다. 생각하고 판단한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다시 미래를 바꾸면 그 상대방은 또 바로 자신에게 불리해진 미래를 느끼고 미래를 바꾸려고 할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는 서로 싸우기도 전에 각자 미래를 계속 보면서 경쟁상대와 가상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기 싸움과 같다. 싸우기 전에 미리 승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래를 놓고 서로 대결하다가 누군가는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다. 이것은 서로 싸우기도 전에 서로 만나기도 전에 더 나아가 서로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면서 자기인생의 최적의 길을 찾아보게 된다.
사람은 타고난 욕구가 무엇인가 재능이 무엇인가는 이미 결정 되어 있으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최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운명을 위에 설명한 논리로 어린 시절부터 찾아 다닌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운명을 만들기 위해 육감을 사용해서 미래를 계속 들여다보고 길을 미리 개척해둔다. 그리고 그 길로 이끌려간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피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운명을 만들고 거기로 나아간다. 복잡해 보이지만 이것이 미리 다 가보고 미리 싸워보고 미리 실패해보고 해서 스스로 만들어낸 최적의 인생 경로라는 이야기이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이것에 대한 의문을 갖은 적이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일만 한다. 물론 드물게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애초에 피해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딱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일부로 맞춰서 하는 느낌도 들었다. (심리학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합리화 해서 생각하지 않으려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아주 좋은 미래가 보인다고 치자. 근대 그 미래를 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험한 길을 통해서 가야만 하는데 그 길이 자기가 감당할 수 있으면 당장 힘들더라도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감당할 수 없다면 그 길을 애초에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과 성공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아주 과거부터 미리 계획하고 만든 길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미리 설정하고 그 길을 가는 운명이라는 생각이다.
운명을 바뀌기 어려운 이유는 내가 바꿔도 상대가 바꾸기 때문이다. 동물은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 인간은 대응을 한다. 따라서 인간 대 인간의 싸움으로 온 세상에서는 한번 정해진 운명을 바꾸기 어렵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것은 가설이지만 만약 운명이 이러한 형태로 흘러간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정답은 그냥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다 싸워보고 만든 당신의 최적의 경로이다.
그리고 당장 눈앞에 결과에 안절부절못한다면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삶이 될 수가 없으며 억지로 무언가를 하면 더 시간적으로 돌아가고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순리대로 살자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 가만히 억지로 하지 않고 타고난 대로 그리고 운명이 이와 같이 존재한다면 더욱더 순응하며 살아야 될 것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